읍내 약재상에서 일하며 아들과 단 둘이 사는 엄마(김혜자 扮). 그녀에게 아들, 도준은 온 세상과 마찬가지다. 스물 여덟. 도준(원빈 扮). 나이답지 않게 제 앞가림을 못 하는 어수룩한 그는 자잘한 사고를 치고 다니며 엄마의 애간장을 태운다. 어느 날, 한 소녀가 살해 당하고 어처구니없이 도준이 범인으로 몰린다. 아들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는 엄마. 하지만 경찰은 서둘러 사건을 종결 짓고 무능한 변호사는 돈만 밝힌다. 결국 아들을 구하기 위해 믿을 사람 하나 없이 범인을 찾아나선 엄마. 도준의 혐의가 굳어져 갈수록 엄마 또한 절박해져만 간다.

봉준호 감독 작품답게 Certified fresh가 인증되어 있고 리뷰도 많다.

 

긍정적 리뷰(Fresh)

봉준호 감독의 <괴물> 후속작인 영화 <마더>는 엄마와 아들 이야기다. 베테랑 배우 김혜자가 연기하는 캐릭터는 이름을 알 수 없지만 통찰력 있고 집착적인 인물로 묘사되며, 그녀는 작은 마을의 약제상에 출근한다. 눈치가 느린 27살의 아들 도준 역할을 맡은 원빈은 엄마에게 완전히 의존한 채 뒹구는 다 자란 강아지마냥 뒹굴고 있다. 거대한 역경과 모든 장애물을 극복해내며 엄마는 진짜 살인범을 쫓는다. 
<괴물>과 <살인의 추억>에서처럼 봉준호 감독은 박은교와 공동 각본으로 함께 했고, 이 서스펜스물을 풍자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봉준호 감독은 배우 김혜자를 염두에 두고 이 영화를 구상했으며, 그는 김혜자가 수십 년 동안 한국 영화와 TV에서 수십년 동안 이상적인 어머니 역을 맡았던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이용했다고 한다. 

이 영화의 오프닝은 그녀가 초원에서 혼자 그녀와 몸을 흔들다가 춤을 추는데, 그녀의 독특함은 별난 플라멩코 사운드트랙이 흘러나오면서 한층 더 강화된다. 작지만 격렬한 느낌이 뿜어나는 김혜자는 어머니를 최후의 생존자로 묘사하고 있었다.
 엄마와 아들 관계는 공생적 관계이다. 아들은 사실상 부속물에 불과하다
. 지독하지만 무일푼인 엄마는 자신의 빈약한 장점 즉, 나이든 여성으로서 무해함과 스스로 거의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보이는 느낌을 모두 이용한다. 섬세한 매력이 있는 잘생긴 원빈은 숨을 쉬는 모습을 통해서 또는 멍청이의 망연자실한 모습을 연기 하면서 얼간이로 변신했다. 엄마처럼, 그는 그의 보이는 모습과는 완전히 다르다. 원빈은 영화에서 제대로 된 성장이 없는 아이의 혼란을 전달하고, 자유로워지길 갈망하는 연기를 한다. 머리 위를 찍은 여러 장면에서 봉준호는 같이 누워 있는 엄마와 아들을 함께 보여주는데, 이때 젖먹이 아이마냥 그의 손은 엄마의 가슴을 잡고 있다. 그 관계는 너무 미정의 것이라, 근친에 해당하지도 않는다. 그러기보단, <그리프터스>의 로이와 릴리 딜런을 생각나게 한다. 

봉준호는 종종 세상과 맞서는 두명의 보잘 것 없는 인물의 감성을 강조하는 롱샷을 끼워넣는다. 특히 감동적인 시퀀스를 들어보자면, 엄마는 도준에게 그의 약을 주기 위해 도준의 뒤를 쫓는 장면이다. 도준이 버스 정류장 근처의 벽에 대고 소변을 볼 때도 그녀는 약그릇을 그의 입가에 가져다댄다. 그가 버스 정류장으로 슬쩍 도망갈 때도 마찬가지. 그리고나서 그녀는 몸을 돌려 소변으로 젖은 도로를 쓰레기로 덮는다. 아들의 행동을 숨기려는 엄마의 부드럽고도 슬픈 몸짓이다.

영화 <싸이코>의 유령이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서 보인다. 엄마와 도준의 구분되지 않는 관계때문만이 아니라, <싸이코>처럼 우리는 종종 우리 자신에 대한 진실을 인정하는 것을 넘어서 '질서'를 우선시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영국 평론가 Jenny Diski가 지적했듯이 히치콕은 그의 영화가 끝나기 전에 Janet Leigh를 죽임으로써 우리를 "모든 충격적이고 하찮은 엔딩"에 직면하게 만들었다. 무력한 당국에 대한 봉준호의 냉소적인 시각과 시스템에서 살아남기 위한 나이 든 여성의 능력은 히치콕의 생각에 대한 현대적 재해석이다. 

 

봉준호 감독은 <괴물>로 강력한 괴물 영화로 문화적, 지정학적 차이점을 해소한 바 있다. (외국에서 한국 영화는 문화적, 지정학적 차이점이 있어서 외국인 감독들의 작품은 환영받기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괴물>로 그 짐을 모두 풀어냈다는 것.) 이 영화는 히치콕의 <싸이코>에서처럼 부서진 프로이트주의를 따르고 있다. 한국에서 어머니 역할로 유명한 김혜자는 문제를 일으킨 한 정신 지체 장애자의 어머니 역을 맡았다.
여학생이 살해당하면서 모든 증거가 아들을 가리키지만, 어머니는 아들을 무죄라고 선언하며, 무죄를 밝혀내기까지 분투한다. 넓은 들판 노란 풀밭 속에서 엄마가 춤을 추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봉준호 감독의 오프닝과 클라이맥스 장면은 영화의 대표적인 장면이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마더>의 오프닝 장면에서 한 나이든 여성이 바람이 부는 넓은 들판으로 걸어 나온다. 우울하나 분명히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다. 곧 그녀는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 장면은 마침내해방된 슬픔과 모든 문제들을 바람에 날려보내는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이 장면은 영화를 흥미롭게 만들었고, 영화의 모티프(주제)를 보여준다. 

김혜자는 도준의 엄마를 연기한다. 도준(원빈)은 시골 촌뜨기에 아무 의욕도 없다. 그는 늘 곤란함에 처한 것처럼 보이나, 엄마는 그런 많은 문제들을 해결해준다. 예를 들어 그가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그가 벽에 눈 오줌을 닦는 것처럼. 어느날 자동차가 그를 뺑소니 치고 달아나면서 그의 삶은 운명적인 전환기를 맞이한다. 화가 난 도준과 그의 친구는 그 차를 따라갔고, 골프장으로 가서 그들의 복수를 하게 된다. 그 일로 인해 도준은 자신이 저지른 기억이 없는 살인죄로 고발당하는 일련의 사건들이 발생한다. 아들의 결백을 증명하기로 결심한 도준의 어머니는 경찰이 추적하지 않는 단서를 따라 스스로 사건의 실마리를 쫓는다. 증거를 쫓는 과정은 대단히 위험했고, 그 결과 마주칠 준비가 되지 않은 충격적인 비밀에 직면하게 된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처럼 <마더>도 풍자적인 유머가 돋보인다. 이 영화는 어둡고 또한 종종 공포스러운 스릴러이기도 하지만, 모든 것이 약간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난 듯 하다. 이 영화에는 Almodovar(스페인 영화 감독) 작품에서 보이는 유머가 있다. 상상할 수 없는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거나, 일어날 것이다. 도준은 건망증이 너무 심해서 우스운 역할이면서도 안타까운 인물이다. 항상 헌신적인 엄마가 그를 보살폈고 엄마 없이는 거의 속수무책이다. 심지어 그녀 스스로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도, 그녀는 묵묵히 제 갈 길을 갈 뿐이다. 

봉준호 감독은 공포가 영화를 압도하거나 유머가 줄거리의 무게감에서 벗어나도록 하지 않으면서 분위기 균형을 잘 맞춰나간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면서도 관객들을 긴장하게 만드는 특이하고 약간 이상한 분위기들이 덮친다. 봉준호 감독의 서스펜스적인 안목은 기술적인 면에서 거의 히치콕과 가깝고,가벼운 터치로 쉽게 그 기술을 다룰 수 있는 듯하다. 도준은 호감이 가지 않는 캐릭터지만 그를 향한 엄마의 열정과 외골수적인 면 때문에 도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심지어 도준의 엄마가 어둠의 구렁텅이로 떨어질지라도, 그녀가 도준의 무죄를 입증하길 우리는 그 무엇보다도 바라게 된다. 

<마더>는 자신의 아들을 위한 어머니를 그려낸 영화다. 그러나 당신은 이 영화에서 어떤 잘못된 신파를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영화 속 사랑에 대한 주제는 모든 것에는 대가가 있기 마련이다, 라고 할 수 있다. 아들을 향한 그녀의 사랑은 너무 외골수적이라서 다른 모든 것을 능가한다. 그러나 그녀와 다른 이들은 어떤 대가를 치루게 될 것인가? 배우 김혜자의 파워풀한 연기를 바탕으로 봉준호가 만들어낸 모성과 어머니의 헌신에 대한 독특한 이야기는 환상적인 스릴러가 된다. 

 

부정적 리뷰(Rotten)

로튼토마토의 리뷰의 88%는 <마더>에게 이미 좋은 평점을 주고 있다. 여기서 내가 할 일은 관객들에게 <마더>를 보기 위해 11달러 정도의 돈을 써야 하는지 여부를 조언하는 것이다. 12%의 비평에 동참하되, 내 주된 관심은 한국에서 가장 호평을 받은 감독 중 한명인 봉준호 감독의 <마더>에서 잘못된 점을 설명하는 것이다. (<괴물>은 아주 훌륭한 솜씨로 고질라 장르를 새롭게 한 작품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화의 다른 부분과 마찬가지로 관객들에게 깊은 소외감을 주는 결말과 긴 상영시간에서 중요한것은 그뿐이란 사실을 밝혀야만 한다. 

영화의 제목인 <마더>는 약제상에 근무하는 한편 무허가의 침술을 하는 늙은 여성이다. 김혜자가 연기하는 27살의 지체아들을 두고 있는 엄마이다. 그들은 같은 잠자리에 들지만, 근친상간은 절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관계가 정상이 아닌 여러가지 사인들이 있다. 엄마는 아들의 밥을 챙기면서 어떤 재료가 정력에 좋다는 말을 습관적으로 한다. 다른 장면에서 도준은 벽에다 대고 소변을 보는데, 엄마는 그의 페니스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

그러나 대게 그들의 관계는 매일 곤란함을 겪을지언정 아들에 대한 변함없는 엄마의 헌신에 대한 것이다. 심각한 정신지체 장애인과는 달리, 도준은 자유의 영혼의 소유자다. 근데 아마도 너무 자유로운 듯 하다. 그는 늦은 밤에 술을 마시러 나가고, 도준의 서툰 헌팅을 거절하는 여성을 뒤쫓기도 한다. 어느 늦은 밤 술에 취한 상태의 그는 한 여고생을 따라 마을로 돌아왔다. 여고생은 그를 피하기 위해 버려진 판잣집에 숨어들었고, 그는 여고생에게 하룻밤을 보내자고 한다. 그 말에 여고생은 그의 발 아래에 무거운 돌을 집어던져 대답을 대신한다. 다음날 아침 그녀는 멀지 않은 곳에서 죽은 채 발견된다. 얼마 후 도준은 살인죄로 체포되고 그의 어머니는 도준은 벌레도 못 죽인다며 그의 무죄를 밝혀내고자 한다. (스포주의)

두 주인공이 한국의 가난한 자이며 온갖 종류의 혐오스러움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은 엄마가 결국 승리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은 관객들의 기대를 저버리기 위해 너무 열중하다 보니 그런 가능성을 빼앗는다. 결국 도준이 살인마로 드러났다. 그는 여학생을 정말로 죽이려고 한 것이 아니라 여고생에게 돌을 다시 던졌을 때 실수로 머리를 치게 됐다. 어머니는 그 사건을 목격하고 유일한 목격자였던 고물상으로부터 듣게 된다. 그가 경찰에 가서 진술하겠다고 하자, 그녀는 파이프 렌치로 그의 두개골을 때리고 집을 불태웠다. 그래서 우리는 혐오스러우나 증오스럽지는 않은 완전히 병적인 인물을 만나게 된다. 관객들은 우리가 더 이상 영웅이 등장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배울 수 있게 된다.

<마더>와 많은 한국 영화 속에는 감탄할 만한 뒤틀린 유머가 많지만, 이 이야기는 어떤 드라마에서나 거의 본능적으로 추구하는 카타르시스가 결여되어 있다. 감독이나 시나리오 작가들의 어떤 깊은 철학적 신념이 없는 허무주의적인 느낌이 영화 속에서 강하게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한 가장 큰 문제는 정신지체장애인들이 사형죄를 선고받는 전형일 것이라 믿도록 이끄는 도준의 혐오스러운 캐릭터성이다. 비록 사전에 계획되지 않은 살인이라고 할지라도 그런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캐릭터를 선택함으로써 봉준호 감독은 나를 실망시켰다. 이 영화는 대부분의 비평가들로부터 극찬을 받기에 충분하지만, 구식이나 정치적으로 올바른 자들에게선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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