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양반은 대역 죄인이니 너무 잘해줄 생각들 말어” 순조 1년, 신유박해로 세상의 끝 흑산도로 유배된 ‘정약전’. 호기심 많은 '정약전'은 그 곳에서 바다 생물에 매료되어 책을 쓰기로 한다. 이에 바다를 훤히 알고 있는 청년 어부 ‘창대’에게 도움을 구하지만 ‘창대’는 죄인을 도울 수 없다며 단칼에 거절한다. “내가 아는 지식과 너의 물고기 지식을 바꾸자" ‘창대’가 혼자 글 공부를 하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정약전’은 서로의 지식을 거래하자고 제안하고 거래라는 말에 ‘창대’는 못 이기는 척 받아들인다. 둘은 티격태격하면서도 점차 서로의 스승이자 벗이 되어 간다. "너 공부해서 출세하고 싶지?" 그러던 중 '창대'가 출세하기 위해 공부에 매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정약전'은 크게 실망한다. ‘창대’ 역시 '정약전'과는 길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정약전'의 곁을 떠나 세상 밖으로 나가고자 결심하는데...

 

 코로나로 영화산업은 거의 패가망신한 것이 다름없다 생각하면서, 한동안 극장을 못 갔다. 한가로운 오후에 텔레비전을 봤는데, '자산어보'의 프리뷰가 아주 짧게 지나갔다. <자산어보>는 천주교로 인해 흑산도로 유배를 당한 정약전이 집필한 물고기 도감이다, 라고 속으로 아는 척을 해보았다. 서른이 된 지금도 기억 나는 것을 보니 모르긴 몰라도 꾸준히 교과서에 등장했나 보다. 그만큼 학창 시절 누구나 들어봤을 그의 대표 저서라고 할 수 있겠다. 영화 자산어보는 <자산어보> 서문에 기술된 창대의 이야기에 작가의 상상을 더해서 만든 스토리라고 할 수 있다. 실존 인물에 대한 영화는 이상하게 구미가 당기곤 한다. 출연진도 매번 나오는 그런 배우도 아니라서 몰입도 쉽겠다, 간만에 흥미도 돋겠다 여차저차하여 채비를 하였다.

 

 

서책을 펼치고 있는 어부와 천상 어부처럼 느껴지는 정약전. 이 사진이 영화의 내용의 대부분을 상징한다고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함.

 

 나는 영화를 보기 전 내가 가진 지식이나, 선입견 등으로 영화에 대한 간단한 예상을 하곤 한다.  정조 임금 시절 한때 소위 끗발나는 관직 생활을 했으나 천주교 박해로 인해 유배를 간 육지 사람 '정약전'과 흑산도 어부 촌놈 '창대'의 이야기라니. 벌써 어떤 이야기가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가. 나는 그랬다. 다만 이것은 건방진 선입견이며, 이 흥미로운 관계성과 작품을 이끌어나갈 감독의 재치가 그것을 산산히 부숴주길 열망하며 입관했다. 안타깝게도 영화에 대한 내 선입견이 적중했다. 그들은 스스로 알고 싶었으며 굶주렸던 지식을 가르치는 서로의 선생이 또는 지기가 된다. 서로의 삶에 서서히 밀물처럼 밀려들어왔다가, 마침내 해일처럼 그들의 삶을 바꿔놓는다. 이야기의 큰 줄기만 놓고 보면 사실 스토리 구성은 뻔하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 없다는 말조차 있을 정도니 오죽할까. 다만, 이를 조금이나마 새롭게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감독의 역량이 되겠다. 중간중간 관객의 폭소를 자아내는 장면들이 있었고, 이를 이렇게 엮어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신기했지만, 이건 다른 영화에서도 볼 수 있는 숱한 장면이니 논외로 치자. 

 

 그럼 흑백영화라는 점에 한번 주목해볼까. '동주'를 보지 않았기에, 씬시티나 올드 무비에서나 접할 수 있었던 한국 흑백영화는 내겐 신선했다. 다만, 이것은 작품 외적인 신선함일 뿐. 내가 주목하는 것은 작품 내용의 신선함이었으나, 나는 상영 시간 내내 그것을 쫓다가 찾지 못했다. 이야기 말미의 파랑새는 잠깐의 여운을 줬을 뿐 시각적 자극에 불과했고, 결말도 마감 시간 다되서 쫓겨나는 듯한 급한 결말, 어디서 본 듯한 이야기 줄기가 작품 몰입을 방해했다. 조선 말기 극심한 사회 혼란 시절이라는 배경을 더 활용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그려지는 영화였다.  

 

 

한마디?

감독의 한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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