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동무를 하고 웃는 이 기분 좋은 포스터가 영화를 모두 보고 난 후에는 굉장히 먹먹하게 다가온다.

언제나 나를 최고라고 말해준 당신이 있어 행복합니다.
명곡 비와 당신으로 88년 가수 왕을 차지했던 최곤은 그 후 대마초 사건, 폭행사건 등에 연루돼 이제는 불륜커플을 상대로 미사리 까페촌에서 기타를 튕기고 있는 신세지만, 아직도 자신이 스타라고 굳게 믿고 있다. 조용하나 싶더니 까페 손님과 시비가 붙은 최곤(박중훈)은 급기야 유치장 신세까지 지게 되는데. 일편단심 매니저 박민수(안성기)는 합의금을 찾아 다니던 중 지인인 방송국 국장을 만나고, 최곤이 영월에서 DJ를 하면 합의금을 내준다는 약속을 받아낸다.
프로그램 명은 최곤의 오후의 희망곡. 하지만 DJ자리를 우습게 여기는 최곤은 선곡 무시는 기본, 막무가내 방송도 모자라 부스 안으로 커피까지 배달시킨다. 피디와 지국장마저 두 손 두발 다 들게 만드는 방송이 계속되던 어느 날, 최곤은 커피 배달 온 청록 다방 김양을 즉석 게스트로 등장시키고 그녀의 사연이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리며 방송은 점차 주민들의 호응을 얻는다. 그러나 성공에는 또 다른 대가가 있는 법...

 

한국 영화 추천작에는 <라디오 스타>가 어디쯤에 걸려 있다. 이 촌스러운 두 남자가 무얼 말할 수 있다고 수작의 반열까지 오른 걸까. 평점도 꽤 높고, 안 볼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세상엔 볼 영화는 많고 시간은 없는 법. 자연스럽게 내 우선순위에서 사라졌었는데... 근데 그런 날 있지 않나. 아무일도 없는데 이상하게 마음 한 켠이 쓸쓸하고 무기력감에 그냥 점이 되어 사라지고 싶은 그런 날. 비가 오다 말다 하는 그런 어둑한 오후 한낮에 딱 이 영화가 생각이 났다.

 

이 영화는 아직도 과거의 슈퍼 스타인줄로만 아는 철 없는 락스타 최곤과 언제나 그를 지지하는 매니저 박민수가 주인공인 이야기다. 작년 이맘때쯤 봤던 영화였는데, 무려 14년 전이니까 촌스럽긴 얼마나 촌스러웠는지. 집약된 자본으로 엄청난 스케일의 영화들이 지금 얼마나 많은데, 이걸 보나라는 자조감도 있었고. 그런데 그 불평불만은 어느 순간 사라지고,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최곤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몇 사람들이 안성기의 얼굴 위로 지나갔다. 그이들은 언젠가의 내가 그 진심을 야멸차게 매도했었던, 그런 이들이었다. 그걸 알아차리자 마침내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 작품은 이 게으르고, 자만심만 넘치는 최곤이 결국 정신을 차리고 개심하여 열심히 살았다, 라고 끝나는 얘기가 아니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있다. 부끄럽지만 나도 그런 사람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라디오스타>는 사람 냄새가 물씬나는 영화다.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내 주변인과의 관계에 대한 회고를 일으킨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과 그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이 영화는 실패한 자 빈곤한 자, 세상살이가 어려운 청년들, 과거에 대한 향수로 후회하며 현재를 좌절하는 수많은 영혼들을 위로하는 그런 영화다. 

누구나 예상이 갈 만한 시나리오. 그러나 세찬 빗줄기처럼 가슴을 두드리는 그런 영화였다. 감동은 글줄로 표현할 수 없다. 결국 스스로가 느껴야 하는 것이니까. 내가 이 영화를 보기 전 좋은 리뷰를 숱하게 봤어도, 그들의 리뷰에 공감도 못 했던 것은 결국 내가 느껴야하기 때문. 백문이 불여일견, 괜스레 일상이 지치고 버거운 날, 당신은 <라디오 스타>를 통해서 깊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나 스스로를 용서하고, 주변인을 사랑하는 방법을 다시 생각나게 하는 그런 고마운 영화였다. 

 

한 마디?

소주 네병에 순대국밥 하나가 땡기는 날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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