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톰 크루즈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짜릿한 만남

2054년 워싱턴, 범죄가 일어나기 전 범죄를 예측해 범죄자를 단죄하는 최첨단 치안 시스템 프리크라임은 시민들의 안전을 지켜주는 든든한 존재이다. 프리크라임 시스템은 범죄가 일어날 시간과 장소, 범행을 저지를 사람까지 미리 예측해내고, 이를 바탕으로 프리크라임 특수경찰이 미래의 범죄자들을 체포한다. 프리크라임 팀장인 존 앤더튼(톰 크루즈)은 천부적인 감각으로 미래의 범죄자를 추적해내는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그가 프리크라임에 최대한의 열정을 기울이는 것은, 6년전 자신의 아들을 잃은 아픈 기억을 다른 사람에게만은 되풀이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앤더튼은 프리크라임 감사를 위해 연방정보국에서 파견된 대니 워트워(콜린 파렐)와 사사건건 대치하는 가운데 프리크라임 시스템은 믿을 수 없는 살인을 예견한다. 그것은 바로 앤더튼 자신이 누군가를 살해하는 범행 장면. 이제 프리크라임의 모든 시스템이 앤더튼을 추격한다. 앤더튼은 음모를 파헤치기 위해, 미래를 바꾸기 위해 직접 미래의 피살자를 찾아나선다. 자신이 저지를 범죄 현장에 한 발짝씩 다가갈수록 앤더튼 앞에는 믿을 수 없는 사실들이 드러나고, 앤더튼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예견된 희생자가 나오는데. 이제 그의 미래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고 마는가...

무한도전에서 영화를 벤치마킹하여 프로그램을 제작한 적이 있다. 영화를 아는 분들은 상당히 웃겼을것

영화는 2002년, 한일월드컵으로 뜨거웠던 해에 나왔다. 내 기억으론 2000년대 초반에는 미래와 관련된 배경을 소재로 하는 영화들이 자주 등장했었던 걸로 기억한다. 대표적인 영화가 <아일랜드>, <이퀼리브리엄>인데, '고도로 발달된 과학'에 대한 세기말 또는 세기초 감성이 지구를 휩쓸었나 보다라고 추측해 본다. 당연히 우리나라도 그 시절 감성으로 말하자면 두 말하면 입 아플 정도;

 

빵을 이렇게 광고할 일인가ㅋㅋㅋㅋㅋㅋㅋㅋ

 

찾아보면 더 많다. 하여튼 이런 감성에 우리의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도 동참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프리크라임 시스템, 즉 미래를 예지하는 능력을 바탕으로 살인 장면을 보고 범행 시간 및 가해자까지 알 수 있는 세상이다. 우발적인 살인을 예정하면 가해자의 이름이 적힌 붉은 공, 계획적 살인일 시 갈색공이 나온다. 그리고 역시나 주인공 존 앤더튼(톰 크루즈)는 위기에 처하게 된다. 계획적 살인 예고 영상에서 그의 모습이 나왔고, 톰 앤더튼의 이름이 적힌 갈색공이 굴러나온다. 그는 곧 쫓기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러나 그냥 죽으란 법은 없다. 그는 프리크라임 시스템을 만들어 낸 박사를 찾아가서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된다.

 

프리크라임 시스템에는 예지자는 총 3명이 있는데, 3명의 예지가 모두 일치한다면 메이저리티 리포트, 일치하지 않는다면 마이너리티 리포트라고 한다. 그러나 단독 의견의 리포트는 파괴된다는 것. 이 말은 즉, 그간 무고하게 체포된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박사는 존 앤더튼이 누명을 벗기 위해선 존 앤더튼의 살인 사건이 담긴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찾으라고 지시한다. 문제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예지자 몸 안에 담겨있다는 것이었다.

 

스필버그가 2054년을 가정하고 그려낸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범죄예방시스템 <프리크라임>을 통해서 현대 사회의 여러 문제점들을 꼬집고 있는 게 특징이다. 먼저 인권 문제가 굉장히 많아 보이는 프리크라임 시스템의 예지자에 대한 억압을 말해볼까. 절대적 악이라고 할 수 있는 살인을 예방하기 위해서 예지자인 인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다수를 위해서 소수의 희생은 불가피하단 것을 의미할 것이다. 우리 모두는 이에 대해 학창 시절 또는 대학교 교양에서 수 없이 배웠으므로, 인식적으로는 이것이 옳지 않음을 분명 알 것이다. 그러나 다수와 소수 모두 즉,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만족할 수 있는 방안은 거의 없다. 자본은 한정적이고, 우린 그 파이를 최대한 나눠먹기 위해 싸우는 피라냐와 같으니까. 결국 그러한 때에 등장하는 논리란 바로 '다수를 위해선 소수의 희생을 불가피하다.'가 되겠다.  (스포주의) 감독은 이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영화 후미에서 이 범죄예방시스템은 결국 사라졌다는 것이 그에 대한 감독의 대답이 되겠다.  

 

두번째로는 '예언'을 통해 개인을 잠재적 살인마로 가정하여, 살인하지도 않은 자에게 예비적 살인이라는 죄목을 씌워서 감옥에 집어넣는 것이 정당한가. 이걸 현대 사회적 관점에 맞춰서 대입해보자. 

 

이년 전 예멘 출신 난민이 제주도에 들어왔다. 난민의 대부분은 무슬림이다. 무슬림 난민들은 전세계적으로 잠재적인 테러 또는 범행 가능성때문에 모든 국가들이 불안해한다. 더군다나, 말레이시아에서 예멘 출신 난민이 말레이시아 국왕 암살을 계획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므로 '제주도 난민들이 우리 나라를 엉망으로 만들어버리기 전에 얼른 내쫓아 보내야 해.'라고 한번쯤은 생각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도 여기에 절실하게 공감한다. 막말로 제주도에서  제2의 독일 쾰른 집단 성폭행 사건이 일어날 지 그 누가 아는가. 끔찍하다. (나는 난민 반대의 입장에 가깝다.)

 

때문에 "위험인자들은 반드시 격리되어야 한다"는 것은 자기보호의 관점에서 어찌보면 당연하다. 그러나 이 관점을 헌법을 수호하고, 헌법에 의해 운영되는 국가기관들에게 도입하면 상당히 위험해진다. '우리 사회의 잠재적 위험'이라고 생각하여 죄없는 희생자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현대사적 비극이 낳아지지 않았던가.   

 

발전된 과학 기술과 인간의 윤리가 부딪칠 때, 우리가 과연 선택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에 대한 스필버그의 대답이 이 영화에 있다. 출연진의 연기는 훌륭했고, 아무리 미래라도 저게 어떻게 물리적으로 가능하냐? 라는 여러가지 생각이 들게 하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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